화성능행도 이야기(1) - 정조의 현륭원 행차

겸리1
2019-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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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능행도. 2018년 7월



겸리 주인장이  무려 3년에 걸쳐 완성한 <화성능행도>입니다. 이 그림의 원본이 처음 그려진 것은 1795년인데, 그때 7명의 화원이 1년 만에 완성했다고 하니 그에 비해서 비교가 안되는 기간이지만, 현대에 이 그림을 혼자 그린다는 것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 것은 사실입니다.


<화성능행도>는 이렇게 공력을 다하여 그릴 가치가 있는 그림입니다. 실제로 존재했던 사실을 기록한 기록화이며, 최초로 왕실의 행사를 묘사한 궁중화인 동시에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배다리와 군사훈련을 그린 그림입니다. 


정조는 1795년 윤 2월 9일부터 2월 16일까지 8일 동안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인 현륭원(顯隆園)이 있는 수원의 화성에 가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행사를 치렀는데 그 행차와 잔치 모습을 그리게 한 것이 이 그림입니다.


당시 정조의 화성 행차는 단순히 어머니의 회갑잔치를 위한 행사가 아니라 정조가 오랫동안 구상하였던 화성이라는 새로운 정치 공간 건설,  제2의 수도로서의 기능을 담당하는 정치, 군사, 상업의 중심지인 화성 건설이라는 원대한 포부를 가지고 그것을 관료와 일반 국민들에게 선포하려는 장대한 국가사업이었습니다. 


정조는 이 행차를 "천년 만의 경사"라고 스스로 높이 평가하며 후세에 널리 알리기 위해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만들어 화성 행차의 전모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였을 뿐 아니라, 김득신, 최득현, 이명규, 장한종, 윤석근, 허식, 이인문 등 자비대령 화원들을 대거 동원하여 이 행사의 주요 장면을 담은 여러 폭의 그림 병풍을 만들게 하였습니다. 당시 진찬도병(進饌圖屛)이라 불렸던 이 병풍은 김홍도가 전체를 총 감독하였으며,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다시 그려졌는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삼성리움박물관, 동국대, 일본 교토대학 등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들 그림들은 전체적으로는 유사하지만 그림 세부에서 약간의 차이가 나고, 각 개별 그림들의 배치 순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겸리 주인장의 그림은 이 중에서도 보물 1430호로 지정되어 있는 리움박물관의 것을 원본으로 하였습니다. 


원래 국립고궁박물관 소장본이 <원행을묘정리의궤>의 순서와 같이 배치하였으나 최근(2000년) 리움박물관 소장본과 같은 순서로 재배열하였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은 각 그림들이 낱장으로 보관되던 것을 순서에 맞지 않게 병풍으로 다시 제작한 것 같습니다.  겸리주인장의 그림도 현재 표구 중이고 아직 병풍으로 만들지는 않았으나 행사의 시간 순서대로 제작 예정입니다.


모두 7,349명의 인원과 수백 필의 말이 등장하는 <화성능행도>는 조선시대 최대 궁중 이벤트를 재현하였을 뿐 아니라 정조가 꿈꾼 화성 신도시를 기반으로 한 왕권 강화의 위의(威儀)를 한눈에 보여주는 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히  조선시대 기록화 중 가장 장엄하고 회화적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가 부족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이러한 <화성능행도> 8폭의 개별 그림들을 순차적으로 간단하게 소개하려 합니다. 

리움박물관 소장 <화성행행도 8폭 병풍>.  각 폭의 높이 147.0cm, 가로폭 62.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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