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능행도 이야기(4)- 서장대야조도(서장대에서 펼쳐진 야간 군사훈련)

관리자
201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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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대야조도> 옻 종이에 분채. 152x63.5cm. 


1795년 윤 2월 12일은 행차에 나선 지 나흘 째이고, 화성에서의 둘째 날입니다. 이날은 오전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에 참배하였고, 오후와 야간에는 서장대에서 두 차례 군사훈련을 하였습니다.


리움미술관 소장본의 세 번째 그림은 원래 <봉수당진찬도>이나 이곳에서는 행사의 순서에 따라 <서장대야조도>를 먼저 취급하고자 합니다. 참고로 전 날인 윤 2월 11일에 봉수당에서 회갑잔치를 예행연습하였고, 정식 회갑잔치가 열린 것은 윤 2월 13일입니다. 화원들도 예행연습이 아닌 실제로 회갑잔치를 여는 모습을 그렸기 때문에 <봉수당진찬도>는 행사 순서에 맞게 뒤로 배치하였습니다.


이 날 군사훈련은 두 번에 걸쳐 시행하였다고 했는데, 일반적으로 성에서 하는 군사훈련을 성조(城操), 낮에 하는 훈련을 주조(晝操), 밤에 하는 훈련을 야조(夜操)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 그림은 서장대에서 야간에 행한 군사훈련을 묘사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참고로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묘사되어 있는 서장대의 군사훈련 모습은  <서장대성조도>로 되어 있습니다.

<서장대성조도- 원행을묘정리의궤>  24.1 x 16.8cm. 고려대학교 소장


<서장대야조도>를 보면, 그림 맨 위쪽에 실제보다 크게 그려진 서장대가 있는데, 주위에 수많은 군사들이 도열해 있는 것이 매우 질서 정연하게 보입니다.

 실제 성곽과 유사하게 묘사한 <화성성역의궤>의 <화성전도>와는 달리 성곽 전체가 타원형 모양으로 세로로 길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때까지 화성은 아직 준공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행궁 건물과 성곽의 일부 건물은 완성되었지만, 성곽(둘레 4,405보, 5,743미터)이 완공된 것은 다음 해인 1796년 8월이고, 화성 전체가 낙성식을 가진 것은 그 해 10월입니다. 그리고 축성공사 보고서인 <화성성역의궤>는 1797년 11월에 일단 완성되었다가 <원행을묘정리의궤>를 참고하여 다시 수정본을 낸 것은 정조 사후인 1801년 9월이었습니다.

 <화성전도-화성성역의궤>.  24.3 x 33.3cm  고려대학교 소장


서장대 아래쪽엔 행궁과 민가가 있고, 가운데 좌우로 각각 팔달문(남문)과 장안문(북문)이 보이며, 장안문에서 왼쪽 아래로는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이, 맨 아래에는 동문에 해당하는 창룡문이 나타나 있습니다. 


팔달문으로부터 순서대로 그림의 세부도와 <화성성역의궤>에 묘사된 해당 부분을 함께 배열해 보았습니다.

그림의 장안문(북문) 세부도와 화성성역의궤의 장안 외도 



그림의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세부도, 화성성역의궤의 화홍문 외도


그림의 창룡문(동문) 세부도와 화성성역의궤의 창룡문 외도



그림의 팔달문(남문) 세부도와 화성성역의궤의 팔달문 외도

이날 군사훈련이 실시된 서장대는 원래 화성장대(華城將臺)로 불렸는데,  팔달산 정상에 위치한 지휘본부로서  동서남북 모든 방향에서 벌어지는 전투나 군사훈련을 총지휘하던 곳입니다. 


서장대는 정조 18년(1794) 8월 11일 공사를 시작하여 9월 29일 완성되었습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중층 누각으로 아래층을 개방하고 한가운데에 장수가 머물 수 있는 마루를 두었고, 위층은 사방에 창을 내고 판자를 깔아 바닥을 만들어 군사가 올라가서 주변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서장대 실경. 현판인 "華城將臺"는 이 날의 군사훈련을 기념하여 정조가 직접 썼습니다.


서장대에서의 군사지휘는 왕이 직접 행하였는데, 그 절차와 훈련 내용은 따로 규칙으로 정해져서 함부로 바꿀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사실 화성을 건설한 목적 중의 하나가 난공불락의 군사요새를 구축하는 데 있었고, 또 이곳에 정조의 친위부대인 장용영(壯勇營)의 외영(外營)이라는 왕에게 절대 충성을 바치는 군사조직을 설치하였던 만큼 화성을 방문하면서 이 부대의 군사훈련을 왕이 직접 실시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림의 <서장대야조도> 세부도와 화성성역의궤의 서장대도


이 날의 군사훈련에서  정해진 규칙에 따라 군사들이 각종 무기와 신호용 깃발이나 포를 갖추고 성곽 곳곳에 늘어서 있고, 서장대 주변에는 지휘관들이 둘러선 가운데 왕의 명령이 하나씩 떨어질 때마다 우렁찬 나팔소리와 함께 서장대에서 깃발이 올라갔으며, 이를 본 사방의 성문에서는 화포로써 응대하고 깃발을 흔들었습니다. 이것은 실제 전투가 벌어졌을 때를 상정해서 짜여진 치밀한 군사 훈련 의식이었습니다.


이 군사훈련에 참여한 군인은 모두 3천7백여 명이었고, 그림에 그려진 인원은 모두 596명입니다. 밤에도 같은 장소에서 야간 훈련이 실시되었는데, 야간에는 횃불이 사용되었고, 성 안의 일반 시민들도 문 위에 등을 하나씩 걸도록 하였습니다.


정조는 군사훈련이 끝난 뒤 수백 명의 장병들에게 화살과 포목 등을 상으로 내려 군사들의 사기를 높였습니다.


리움박물관 소장 <서장대야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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