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능행도 이야기(7) - 득중정어사도(득중정에서 활쏘기를 하다)

관리자
2019-08-20
조회수 3492

<득중정어사도>. 옻 종이에 분채. 152x63.5cm


행사의 여섯째 날인 윤 2월 14일, 양로연을 마지막으로 이번 행차의 공식 행사는 거의 마무리된 것이었습니다. 양로연이 끝난 후 정조는 북문인 장안문과 화홍문을 거쳐 방화수류정를 둘러본 후 오후 신시(申時 오후 3~5시)에 낙남헌 바로 뒤의 득중정으로 가서 신하들과 함께 활쏘기를 하였습니다.

원행을묘정리의궤 중의 <득중정어사도>


이날 영의정 홍낙성을 비롯하여, 수어사 심이지, 총융사 서용보, 검교직각 남공철 등 많은 신하들이 왕과 함께 활쏘기에 참여하였습니다.


활쏘기는 세가지 종류의 화살을 가지고 하였는데 성적이 가장 뛰어난 사람은 정조였습니다. 세 종류의 화살을 총 60번 쏘아서 왕은 51번을 맞추었는데, 2등은 35번을 맞추어 1등인 왕과 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신하들이 일부러 왕에게 져주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사실 정조의 무예실력은 매우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조는 활쏘기 연습을 포기하고 연습하지 않은 지 4년이 지났는데 이 날 명중이 잘된 것은 우연일 뿐이라며 가장 나이가 많은 영의정을 오히려 격려하였습니다.


이 날의 활쏘기는 두 번에 걸쳐 시행되었습니다. 첫 번째 활쏘기를 마친 후 신하들과 저녁식사를 나눈 정조는 해가 지자 야간 활쏘기 준비를 명하여, 작은 표적을 설치하고, 횃불 두 개를 표적의 좌우에 설치하게 했습니다.

이 야간 활쏘기에서 왕은 10번을 쏘아 다섯 개를 맞추었습니다.

표적 세부도. 작은 표적과 좌우의 횃불 2개, 그리고 그 뒤에도 횃불이 4개 더 놓여 있습니다.


야간 활쏘기가 끝나자 왕은 군사훈련(즉 성조城操)이 끝난 뒤에는 매화(埋火, 땅에 묻은 화약)를 터뜨리는 것이 순서라며 매화포 준비를 명합니다. 아마 서장대에서 야간훈련이 끝나고는 실시하지 않은 대신 이 날의 활쏘기를 군사훈련으로 간주한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이 매화포 의식이 원래 군사훈련 후 실시하여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림에서 매화포 터뜨리는 장면 세부도


이 매화포를 터뜨릴 때에는 특별히 혜경궁을 모셨습니다.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 그림 맨 위 득중정 앞에 혜경궁의 가마를 놓았으며, 왕이 친히 이 장면을 보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혜경궁의 가마 약간 아래 왼쪽 낙남헌 안에 어좌를 상징적으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혜경궁의 자리 세부도


왕의 자리 세부도


득중정은 <낙남헌방방도>에서 언급하였듯이 정조 18년(1794) 가을에 낙남헌(洛南軒)을 새로 지으면서 그 터에 있던 득중정을 노래당(老來堂) 뒤쪽으로 옮겨 지은 정자입니다. 득중정은 건물 자체가 활을 쏘기 위한 목적으로 건립한 정자입니다.

 낙남헌 바로 위쪽(서쪽)의 득중정. <화성성역의궤 > 세부도


정조 14년(1790)에 처음 득중정이 만들어진 후 정조는 행차 시마다 매번 이곳에서 활쏘기를 하였는데 이 정자에서 활을 4발 쏘아 4발 모두 맞히고는 이를 기념하여 '득중정'이라 이름을 짓고 직접 편액을 써서 걸었습니다.

득중정 실경


<득중정어사도>에는모두 613명의 인물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리움 박물관 소장 <득중정어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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