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장생도(十長生圖)

관리자
2019-07-20
조회수 10943


겸리. <십장생도> 옻종이에 수간분채. 68cm x 158cm. 2016년. 십장생은 무병과 장수의 상징입니다 


십장생도는 거북이, 학, 사슴 등의 동물들이 아름다운 자연의 이상향이 펼쳐진 곳에서 평화롭게 노닐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입니다. 그 자연 속에는 소나무, 바위, 해, 구름, 산, 물 등 장수를 상징하는 것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학이나 영지(불로초) 등은 도교나 신선사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십장생도는 이러한 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불로장생에 대한 꿈과 희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길상(吉祥) 장식화이며 장생도(長生圖)입니다.


불로장생의 염원을 담은 이러한 장생도는 중국에서 시작되었으나, 열 가지의 상징을 모아 그린 십장생도는 순수한 우리나라의 것입니다. 중국이나 일본의 장생도에서는 십이라는 숫자의 조합보다는 장생의 상징 몇 가지를 조합하는 데 그쳤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십장생의 개념(도상)이 처음 성립된 것은 고려 시대입니다. 이 사실을 알려주는 것은 고려 시대 학자이며 문인인 이색(李穡 1328∼1396)이 지은 [세화십장생 歲畫十長生]이라는 시입니다. 이색은 이 시에서 십장생과 그것을 표현한 그림인 십장생도를 처음 언급합니다. 


"세화(歲畫) 십장생(十長生)을 읊다. 

십장생은 곧 해, 구름, 물, 돌, 소나무, 대, 지초[芝], 거북, 학(鶴), 사슴이다.


우리 집에는 세화십장생이 있는데, 지금이 10월인데도 아직 새 그림 같다. 병중에 원하는 것은 오래 사는 것보다 더할 것이 없으므로, 죽 내리 서술하여 예찬하는 바이다.

歲畫十長生

日雲水石松竹芝龜鶴鹿

吾家有歲畫十長生。今茲十月尙如新。病中所願無過長生。故歷敍以贊云"

                                             -  이색,  [목은집, 목은시고 제12권] 중 -



이렇게 시 첫 부분에서 언급한 다음 십장생에 대한 묘사를 시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하고 있는데, 시의 내용은 생략하겠습니다(시의 내용을 보시려면 클릭하세요)


그러나 고려 시대의 십장생도는 아직 한 점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색도 한 점 소장하고 있다고 분명히 서술하였는데 현재까지 전해지는 것은 없는 것입니다. 다행히 고려 시대 <십장생문 동경>이라는 청동 거울을 통하여 그 시기 십장생도의 이미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십장생문 동경> 고려 시대. 청동. 지름 18.4cm.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 박물관


이 동경의 뒷면에 십장생도의 이미지를 새겨 넣었는데, 해, 구름, 물, 돌, 소나무, 대나무, 영지, 거북, 학, 사슴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구성은 위에서 언급한 이색의 시에 나오는 십장생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뿐만 아니라 수백 년이 지난 후 조선시대 후기까지 십장생의 내용은 별로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후에 소나무 대신(혹은 소나무에 추가하여) 복숭아나무가 그려진 십장생도 있고(아래 그림 참조),  달과 산이 추가된 경우도 있어 모두 13가지가 십장생도의 소재로 사용되었다고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십장생도병> 18세기 후반. 비단에 채색. 210x515cm. 리움.


 이 그림이 십장생도 중 가장 제작 시기가 이른 그림입니다. 십장생에 복숭아나무를 추가하였습니다. 

겸리 주인장이 그린 십장생도의 원본은 미국 오리건대학교에서 소장하고 있는 열 폭 병풍입니다. 


<십장생도병> 1880년. 열 폭 병풍. 비단에 채색. 201.9x521.0cm. 오리건대학교 조던 슈나이처 박물관


이 <십장생도병>은 1880년(고종 16)에 만들어졌습니다. 그전 해인 1879년 훗날 순종이 되는 왕세자가 천연두에 걸렸다가 완쾌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고종은 당시 의약청에 명하여 이 그림을 그리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의약청 관리 14명이 주체가 되어 병풍을 제작하였는데, 그림의 정식 명칭은 <왕세자두후평복진하계병(王世子痘候平復陳賀契屛>입니다. 


오리건대학교 박물관의 <십장생도병>은 현존하는 십장생 그림 중에서도 채색이 화려하고 묘사가 가장 섬세한 것이 특징입니다. 또한 지금까지 제작 시기와 이유가 확인된 유일한 십장생도여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그동안 알려진 십장생도는 대부분 그린 시기를 알 수 없었고 그려진 사유, 소장자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다만 화려하고 정교한 채색의 십장생도는 왕실에서 유래한 궁중 양식으로 알려져 왔는데, 이 그림은 이를 입증해주는 사례인 것입니다. 

이러한 병풍은 그림의 왼쪽에 있는 좌목에 기록된 인물들이 비용을 모아 여러 점을 그리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이 중 한 본을 궁중에 진상하고, 해당 관청에 하나를 남겼으며, 참여한 관료들도 한 점씩 나누어 가지게 되는데 이때 그려진 병풍 중의 한 점이 바로  오리건대학 박물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십장생도병>입니다. 


 오리건대학에서는 1924년 시중에 나돌던 <십장생도병>을 당시 경성부 태평동에 있던 무역상 테일러 상회를 통해 750달러에 구매하여 현재까지 대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는데,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큰 이 그림이 외국에 있다는 것은 문화적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십장생도병>이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86년 만인 2010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국외문화재 보존처리 지원 사업 대상으로 한국에 돌아왔다가 2012년까지 2년간의 보존처리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일반에게 처음으로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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